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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스타 프로필

프란치스코 교황 서거 선종 프로필 나이 마지막 길

by 인물서기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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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생애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또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건 참 특별한 일이죠. 88년을 살아온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교훈이었고,

인류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조용히 가리켜주는 나침반 같았습니다. 2025년 4월 21일, 이 위대한 인물은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남긴 흔적은 아직도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죠.

세상을 품은 미소, 철제 십자가를 선택한 교황

그분이 처음 교황으로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화려한 의전도, 금박으로 둘러싸인 장식도 없이, 너무도 평범한 신발을 신은 분이었습니다. 순금 대신 철로 된 십자가를 목에 건 채, 평소 타던 소형차에 올라탄 그 모습은 우리에게 아주 낯설지만 신선한 충격이었죠. 그 순간부터 사람들은 깨달았습니다. ‘아, 이번 교황은 뭔가 다르다.’

비유럽권 첫 교황, 그 출발부터 역사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남미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신대륙 출신 교황이자 비유럽권 인물로 선출되었습니다.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그는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어린 시절에는 양말 공장에서 청소하고 서류 정리를 돕기도 했다고 해요.

학창 시절엔 식품화학을 공부하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성실한 청년이었죠. 그런 배경 때문인지, 교황이 된 이후에도 늘 서민적이고 겸손한 삶의 태도를 고수했습니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포장하지 않고, 언제나 ‘같이 걷는 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

산타 마르타의 작은 방, 그분의 선택

바티칸에는 호화로운 교황 전용 관저가 있습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공간 대신 일반 사제들과 함께 사용하는 공동 숙소, ‘산타 마르타의 집’을 택했습니다. 사실 교황의 권위라면 충분히 더 편하고 넓은 공간에서 지낼 수 있었지만, 그는 본인의 위치보다는 함께 사는 공동체의 의미를 더 소중히 여겼죠. 이런 작은 선택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소박함의 아이콘’으로 불릴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전쟁과 갈등 속에서 평화를 외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공존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2015년 미국과 쿠바가 국교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중재자 역할을 했고, 2017년에는 미얀마에서 로힝야족 박해가 벌어졌을 때 그곳을 직접 찾아가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가장 위험했던 지역에도 마다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기며 “사랑과 대화”의 중요성을 설파했던 그분의 행보는 단순한 외교를 넘어서 인류의 존엄성에 대한 선언과도 같았죠.

2021년에는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이라크를 방문하며 무장테러 희생자들을 직접 위로했습니다. 이처럼 종교인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했던 지도자였습니다.

생명의 존엄성과 기후 위기, 인류가 들어야 할 메시지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선명한 입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 파괴가 가속화되던 시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통해 지구를 돌보는 것이 신앙과 인류의 도리임을 설파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지구를 사랑합시다’라는 말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탐욕이 만들어낸 위기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했죠. 특히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비판하며 “경제는 사람을 위한 것이지, 사람을 소외시켜선 안 된다”고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이런 메시지에 많은 이들이 귀를 기울였고, 교황의 철학은 종교를 초월해 전 세계 시민사회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을 향한 깊은 애정과 미완의 방북

2014년,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교황의 발길이 닿은 곳은 바로 대한민국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의 미사’는 단순한 종교 행사를 넘어 남북의 분단 현실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순간이었죠. 당시 교황은 북한 방문도 희망했지만, 아쉽게도 북측의 미온적인 반응으로 무산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여러 차례 교황청은 방북 의사를 타진했고, 프란치스코 교황 본인도 기회가 된다면 기꺼이 북한을 방문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 뜻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고, 교황의 두 번째 방한은 2027년 서울에서 열릴 ‘세계청년대회’에 기대를 모았으나, 이번 선종으로 그 바통은 차기 교황에게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품위 있게, 간소한 장례를 원한 진심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에 본인의 장례에 대해서도 이미 방향을 정해두셨습니다. “모든 사람과 똑같이, 간단하고 조용하게.”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해서 더 많은 영광이나 화려한 배웅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교황의 마지막’이 아니라 ‘형제의 작별’을 기억해주길 바라셨던 거죠. 그의 바람대로, 바티칸은 교황님의 마지막 길을 간소하고 경건하게 준비 중이며, 신자들은 전 세계 곳곳에서 조용히 애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불교계의 애도, 종교를 초월한 연대의 상징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에 국내 불교계에서도 애도의 메시지가 전해졌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진정한 스승이자 인류의 벗”이라며,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했던 교황의 삶을 깊이 기렸습니다. 두 종교 간의 우정, 그리고 평화와 화합이라는 공통 가치는 이렇게 마지막까지 이어졌습니다. 진심이 닿은 곳에서는 종교의 경계도, 문화의 차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순간이었습니다.

교황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사람들은 큰 별이 졌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이죠. 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닌, 한 시대의 정신이 우리 안에 새겨진 날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것은 화려한 업적이나 위대한 수사법이 아닙니다. 그가 보여준 삶의 태도, 인간에 대한 애정,

그리고 우리가 너무 쉽게 놓치고 살아가는 ‘함께 살아가는 의미’에 대한 진심이죠. 이제 남은 건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교황님이 남긴 그 메시지를, 일상 속에서 조금씩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애도이자 존경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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