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와 1990년대, 한국 남자배구가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그 시절. 그 중심에는 누구보다 눈에 띄는 한 선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돌고래처럼 높이 솟구치는 점프’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장윤창 교수님이죠. 오랜 시간 한국 배구의 상징 같은 존재였던 그분이, 안타깝게도 2025년 5월 30일,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소식을 들은 순간, 마음 한켠이 허전하고 아려왔습니다. 배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장윤창이라는 이름만은 기억하고 있을 만큼, 그분이 한국 배구에 남긴 흔적은 실로 깊고도 넓었으니까요. 오늘은 그분의 삶과 발자취를 되짚으며, 한 시대를 풍미한 배구인의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17살, 고등학생 국가대표의 탄생
1978년,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한 청년이 대한민국 남자배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됩니다.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고, 그만큼 그 청년의 실력은 범상치 않았죠. 그가 바로 장윤창입니다. 인창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그는 단숨에 최연소 국가대표 타이틀을 거머쥐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국가대표로 첫 발을 디디자마자, 그는 그해 세계선수권 무대에서 맹활약하며 한국을 4강에 올려놓는 데 기여했죠. ‘어린 천재’라는 수식어가 절로 붙을 만큼, 어린 나이에 보여준 경기력은 가히 경이로웠습니다.
‘돌고래 스파이커’라는 별명의 유래
배구 팬들이 ‘돌고래 스파이커’라고 부른 이유는 간단합니다. 마치 바다를 가르는 돌고래처럼, 네트를 향해 솟구치는 그의 점프는 눈부셨고, 허공을 가르는 스파이크는 전율 그 자체였으니까요. 특히 장윤창 선수의 점프 높이는 그 시절 기준으로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이 압도적인 점프력과 파워풀한 스파이크가 더해져 상대 수비수들은 늘 그를 경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그는 단순히 힘으로 때리는 선수가 아니라, 타이밍, 위치 선정, 몸의 방향까지 세심하게 조절하며 배구의 미학을 실현한 아티스트였다는 점이에요.
‘스카이 서브’의 탄생자, 기술까지 개척한 선수
장윤창 교수님은 단지 팀의 에이스만은 아니었습니다. 한국 배구계에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스카이 서브’라는 기술의 원조이기도 하죠.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기술이었고, 배구 전술의 패러다임을 뒤흔든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스카이 서브는 말 그대로 하늘을 가르는 고공 서브로, 네트 위에서 예측하기 어렵고 수비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이 기술을 처음 구사해 공식 경기에서 성공시킨 선수가 바로 장윤창이었습니다. 단순히 힘이 센 선수가 아닌, 기술을 연구하고 배구의 미래를 고민하던 선구자였던 셈이죠.
고려증권 시절, 배구 인기의 정점에 서다
장윤창 교수님은 고려증권 창단 멤버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고려증권 배구단은 국내 남자배구의 최강팀 중 하나였고, 프로화 이전 실업 배구의 중심 축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장윤창 선수는 명실상부한 에이스였고, 팀의 리더로 활약하며 수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죠.
실업배구 리그가 지금처럼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출전하는 경기장에는 늘 팬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장윤창이라는 이름 안에는 인간적인 매력, 진정성, 그리고 스포츠에 대한 진심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은퇴 후, 경기대 교수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다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뒤에도, 그는 배구와의 인연을 놓지 않았습니다. 경기대학교 스포츠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후배들을 가르치는 데 헌신하셨죠. 배구 기술뿐 아니라, 선수로서의 자세와 인성, 경기 외적인 태도까지 직접 몸소 가르치며 제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셨습니다.
교수로서의 모습은 현역 시절과 또 다른 느낌이었지만, 그 중심엔 늘 배구에 대한 사랑과 진심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제자들이 장윤창 교수님의 따뜻한 가르침을 기억하며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끝까지 배구를 향한 애정을 놓지 않았던 사람
최근 몇 년간 건강이 악화되며 장기간 병환을 앓아오셨다고 합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조용히 투병 생활을 이어오셨다고 해요. 병마와 싸우는 동안에도 끝까지 후학 양성과 한국 배구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으셨다고 하니, 그 진심은 마지막까지도 흔들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분의 별세 소식은 단순한 스포츠인의 은퇴가 아닌, 한 시대의 마침표를 의미하는 듯했습니다. 어릴 적 TV로 보던 그분의 점프와 스파이크가 아직도 눈에 선한데, 이제는 더 이상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기만 합니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남긴 울림
장윤창 교수님이 한국 배구에 남긴 영향력은 단순한 기록이나 숫자로 표현될 수 없습니다. 그의 플레이를 보고 배구를 시작한 사람들, 그의 말 한마디에 용기를 얻었던 제자들, 그리고 그의 인생을 보며 스포츠의 의미를 새로이 깨달은 모든 이들에게 그는 단순한 스포츠인이 아닌 하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윤창이라는 이름은 곧 한국 남자배구의 성장사이자 감동의 상징이기도 하죠. 우리는 그분을 통해 배구가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작별 인사를 대신하며
지금쯤 하늘에서는 다시 한 번 멋진 점프를 선보이고 계시겠죠.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 선배로서 너무나 멋진 길을 걸어오신 장윤창 교수님. 당신의 마지막 길이 평안하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언제까지나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이 보여주었던 그 뜨거웠던 순간들을.
고맙습니다. 그리고 안녕히 가세요.
장윤창 교수 프로필 간략 정리
- 출생년도: 1960년 (향년 65세)
- 출신학교: 인창고등학교
- 국가대표 발탁: 1978년 (만 17세, 최연소)
- 소속팀: 고려증권 배구단
- 대표 기술: 스카이 서브 창안, 아포짓 스파이크
- 은퇴 후 활동: 경기대 스포츠과학부 교수
- 별세일: 2025년 5월 30일
- 사인: 위암 말기 지병 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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