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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스타 프로필

손학규 의원 프로필 근황 고건 나이 고향

by 인물서기 2025.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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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이름만 들어도 정치인이라는 느낌이 드는 인물이 참 드뭅니다. 하지만 손학규라는 이름을 들으면, 세월을 살아낸 진짜 '정치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죠.


젊은 시절부터 불꽃같이 사회운동에 뛰어들고, 감옥에 갇히며,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오늘은 손학규 전 대표의 삶을 차분하게 정리해보려 합니다.


 
단순히 정치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지식인이자 실천가로서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까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서울 금천에서 태어난 막내아들, 손학규의 어린 시절

1947년 11월 22일, 지금의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서 태어난 손학규 전 대표는 당시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시흥리 출신입니다.

4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유년 시절을 시흥 지역에서 보냈고,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도심으로 이사하게 됩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여느 평범한 가정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버지 손병화 선생님은 광명 지역의 교사였으나, 안타깝게도 교통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이후 가족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죠.

공부 잘하는 소년에서 시대를 읽는 청년으로

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업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습니다.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진학합니다. 당시만 해도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1964년 6.3항쟁에 참여했다가 구속되었고,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하게 됩니다.
그 이후 대학 시절에는 김근태, 조영래와 함께 '65학번 삼총사'로 불릴 정도로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당시 사카린 밀수 사건을 비판하다 도피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강원도 정선의 함백역 인근 탄광촌에서 광산노동자로 지내며, 그곳에서 직접 노동자들의 삶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경험은 단지 투쟁의 상징이 아니라, 이후 정치철학과 삶의 태도에 깊이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었죠.

육군 병장 만기 제대, 감옥과 도피 속에서도 이어간 병역의 의무

1969년, 그는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하여 1972년에 병장으로 만기 전역합니다.

당시 사회운동을 활발히 하던 대학생 신분으로 입대한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었죠. 군 복무를 통해서도 그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민주화의 횃불, 그리고 혹독한 대가

복학 후 본격적으로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그는, 박정희 정권의 철저한 감시와 탄압 속에서 여러 차례 감옥을 드나들게 됩니다. 유신 정권 하에서는 '상시 수배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했고,

어머니 장례식조차 조문 후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죠. 부마민주항쟁 당시 진상조사를 벌이던 중에는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고,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까지 맞이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되며 극적으로 풀려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영국 유학길, 그리고 다시 학자의 길로

1980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후원으로 그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석박사 통합과정(Master of Literature)을 이수하고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 후 귀국하여 시민운동가로 활동합니다. 이후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원장을 지냈고, 인하대와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최장집 교수 등과 함께 진보적 정치학 담론을 이끌며 학계 내에서 명성을 쌓았고, 소장 학자들과의 연대도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의 학문적 기반은 훗날 정당 정치에 참여할 때 중요한 철학적 근간이 되었습니다.

믿음 속의 정치인, 종교적 색채는?

손학규 전 대표는 개신교 장로회 교단 소속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연관된 NCCK 활동에도 적극 참여해왔습니다. 다만 부모님은 천주교 묘지에 안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가족 내에서는 종교적 다양성도 있었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지금의 손학규 – 정치를 넘어 삶의 균형으로

정치 활동에서 손학규 전 대표는 중도 개혁주의 노선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습니다.

극단적인 진영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과 균형을 강조하며 정책 중심의 정치를 지향했던 그의 노선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철학으로 평가받습니다. 최근에는 공개적인 정치 활동은 줄이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사회적 발언을 이어가고 있으며, 간간히 언론 인터뷰나 강연 등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손학규 전 대표의 삶을 돌아보면, 그는 단순한 정치인을 넘어선 '시대의 증언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옥, 도피, 해외 유학, 교수 생활, 시민운동, 정당 정치… 그의 이력 하나하나가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그를 향한 평가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있지만, 분명한 건 그가 자신의 방식대로 시대의 질문에 응답해왔다는 점입니다.


정치라는 말이 흔들릴 때, 손학규라는 이름은 다시 한번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킵니다. 지금의 정치가 놓치고 있는 '품격'과 '철학'을 그는 몸으로 증명해왔고, 아마도 앞으로도 그러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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